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(문단 편집) === [[홍철 없는 홍철팀|트리폴리 없는 트리폴리 백작]] === 아직 트리폴리 시도 가지고 있지 않은 트리폴리 백국에는 유력한 후계자가 세 명이나 있었다. 한명은 레몽의 아들인 베르트랑과 알폰소였고[* 알폰소는 레몽이 순례자의 산에 성을 쌓고 있는 와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너무 어려 백작의 후계자였지만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했다.], 다른 한명은 그의 사촌인 기욤이었다. 레몽의 가문은 베르트랑을, 주변국을 다 집어삼킬 기세로 약탈하고 있던 [[안티오키아 공국]]은 기욤을 후계자로 주장하며, 아직 가지고 있지도 않은 성에 대한 계승 전쟁을 벌였다. 보다 못한 [[예루살렘 왕국]]의 보두앵 1세는 기욤과 베르트랑이 각각 트리폴리 백국을 분할해서 가질 것을 명령했다.[* 이는 사실 보두앵 왕이 안티오키아 공국을 견제하기 위해 세운 방책이었다. 십자군과 이슬람을 가리지 않고 약탈하던 안티오키아가 트리폴리까지 먹는다면, 예루살렘 왕보다 권력이 강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.] 베르트랑은 실망하지 않았다.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[[제노바]]와의 조약을 맺어 대 함대를 불러들였고, 남프랑스에서 1만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해 트리폴리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. 제노바 용병들과 베르트랑의 군대, 그리고 기욤과 안티오키아 공국군은 결국 1109년 7월 12일에 트리폴리 성을 함략시킨다. 이 전투에서 베르트랑에게 행운이 찾아온다. 기욤이 군대를 이끌고 성으로 처들어가던 중, 화살에 맞아 숨졌던 것. 베르트랑은 이제서야 트리폴리 시를 가진 백국의 유일한 백작이 되었고, 제노바와 맺은 통상 조약, 레몽에게 호의적이었던 [[동로마 제국]]의 소규모 지원, 풍부한 물자와 병력을 토대로 튼튼한 백국을 건설하기 시작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